Search
📁

1. 기본소득, 붕괴를 막고 모두의 미래를 구하는 길

필자
기본소득당 오준호 공동대표
인터뷰어/사회/대담
기본소득, 붕괴를 막고 모두의 미래를 구하는 길
정세랑 작가의 소설에 미래에서 온 거대 지렁이가 화석연료와 플라스틱으로 지은 현대 문명을 집어삼켜 인류가 멸망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행히 아직 미래에서 거대 지렁이를 보내지는 않았다.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미래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거대 지렁이 대신 다른 것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다. 이 단순 명쾌하며 지금 우리 부와 기술로 불가능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서둘러 실현하지 못한다면, 진실로 암울한 미래가 닥쳤을 때 우리에겐 어떤 변명이 남아 있을까?

공동체의 세 가지 위기, 해법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정치 공동체가 모든 성원에게 일정한 소득을 조건 없이 보장하는 제도다. 심사 없이 모두에게 주고,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지급하고, 소득의 반대급부로 어떤 조건도 걸지 않는 것이 제도의 핵심 내용이다.
기본소득은 이처럼 단순한 아이디어다. 그 단순한 아이디어에 세계 많은 나라 정부와 지방정부가 뜨겁게 관심을 보였다. 한국도 기본소득이 몇 년 새 중요한 정치 의제로 부상했다. 바야흐로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한 두 후보가 나섰다. 한 사람은 기본소득당 후보인 나, 다른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이재명 후보는 현 대통령과 불과 0.7% 차이로 낙선했다. 이것은 기본소득의 패배인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한국이 세계 최초로 전 국민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나라가 되기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지금껏 모든 한국 정부는 기본소득 같은 과감한 대안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거나 반대에 적극적이었다. 기본소득은 얼음왕국 성문처럼 단단한 반대와 편견을 녹여 그 문을 거의 여는 데 이르렀다. 다만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PER ASPERA AD ASTRA)’라는 문장으로 다짐을 밝혔다. ‘기본소득 사회’라는 별에 도달하자는 의지였다. 시대 상황은 기본소득을 더 절실하게 요청할 것이고, 미래에 기본소득은 실현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질문이 붙는다. 어째서인가? 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나?
기본소득 없이는 우리 공동체에 다가오는 붕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우리 정치 공동체가 처한 파국적 위험을 해소하는 최선의 확실한 방안이다.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세 가지 커다란 위험이 있다. 기후·생태 위기, 분배 위기, 민주주의 위기다. 기후·생태 위기는 각종 이상기후 현상을 체감하는 우리에게 더 설명이 필요 없다. 이 위기의 끝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온다고 많은 이가 느끼고 있다. 분배 위기는 날로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 상대적 빈곤 악화를 의미한다. 그 배경엔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 소수에게로 자산 집중, 자동화·디지털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노동시장 양극화 등이 있다. 민주주의 위기는 세대, 계층, 젠더, 지역 등 각 영역마다 적대적 분열이 커지며 공동체 해체로 치닫는 위기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이 갈등을 이용하면서 민주주의는 그저 형식만 남고 사실상 내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위기들이 심각한 이유는, 오래 누적된 역사적 위기이자 서로 얽힌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라는 걸 알면서도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틀기가 매우 어렵다. 기득권 세력은 막강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런저런 대책이 나왔지만 위험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커져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다.
기후·생태 위기 따로, 분배 위기 따로, 민주주의 위기 따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위험한 미래’를 ‘바라는 미래’로 바꿀 길이다. 여기에 기본소득의 의의가 있다.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과 정의로운 분배 그리고 공동체 연대 회복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열쇠다. 각각의 위기에 대한 이미 제출된 해법들을 기본소득과 연결할 때 비로소 전체 회로에 불이 ‘반짝’ 들어온다.
상세히 살펴보자. 기후·생태 위기 해결의 관건은 그동안 물 쓰듯 해댄 탄소 배출을 단호하게 멈추는 것이다. 한국은 매년 7억 톤씩 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기후 임계점 도달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6년이다. 빈번한 기후재난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또 그 피해가 사회 불평등을 더 키운다. 해법은 나와있다. 탄소 배출에 지금보다 매우 높은 가격을 부과하는 것이다. 문제는 탄소 배출 가격을 높이면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도 올라가서 서민이 고통스럽다는 점이다. 방법이 있다. 탄소세를 신설해 탄소가격을 높이되, 그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면 대다수 서민은 부담이 상쇄되고 저소득층은 혜택을 얻는다. 기후위기 해법을 저항 없이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분배 위기의 전통적 해법은 시장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배 위기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해법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저성장과 자동화·디지털화 때문에 더 이상 소득과 고용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일자리는 틈새 노동이나 부스러기 노동으로 불리는 불안정한 단시간 일자리들이다.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생계소득을 보장하는 새로운 분배방식이며, 동시에 노동자가 더 나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힘과 여유를 준다. 실은 이 힘과 여유를 ‘부잣집 청년’들은 이미 갖고 있다. 그리고 조세개혁을 통해 고소득층과 고액부동산보유자가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 기본소득 재원을 확보한다면 분배정의 실현은 더 뚜렷해진다.
기본소득은 소득 재분배를 통해서도 민주주의 위기 해결에 기여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민주정치에서 올바로 대표되지 못하는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는 발판이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기본소득 보장에 따른 생계노동 시간 감소가 ‘참여 기회의 평등’을 이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선별 없이 일정 소득을 보장하면 사회적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은 2020년 코로나19 재난 초기에 ‘재난기본소득’ 곧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받아본 경험으로 우리 모두 확인했다.
정리하면, 이 얽히고 누적된 다중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기본소득 같은 ‘그랜드 디자인’이 절박하다. 기본소득의 목적, 곧 모든 시민에게 경제적 안전과 실질적 자유를 제공하고 공동체 활동에 균등한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위기의 해결책인 동시에 위기를 만든 낡은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수단이다. 나는 기본소득 제도의 전환적 기능을 기대하는 한편, 기본소득을 보장받은 시민들이 전환의 주체로 속속 나서리라고 기대한다.

기본소득 ‘제3기’를 시작하자¹⁾

대선이 끝나고 한국에서 기본소득의 목소리가 다소 잦아든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패배와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앞서 말했다. 그럼 지금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한국 기본소득 ‘제2기’가 마감되는 중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2016년을 기준으로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주로 비제도적 영역에서 기본소득을 퍼뜨려온 시기다. 2009년 창립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이 활동의 중심에 섰다.
기본소득 2기는 1기의 성과를 딛고, 기본소득이 제도권 정치로 돌격한 시기다. 2016년 7월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서울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를 열었는데, 이 행사에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축사를 했다(2022년 대선 직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했던 사람이다). 제도권 거대정당 정치인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같은 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기본소득 철학을 받아들여 ‘성남시 청년배당’을 시작했다. 정책이 호응을 얻자, 기세를 몰아 이재명 대표는 2018년에 경기도지사가 됐고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했다.
2기에서 결정적 사건은 코로나19가 제공했다. 감염병으로 생계수단이 끊긴 사람들은 국가에 소득보장을 요구했다. 정부는 관성적으로 일정 소득수준 이하 국민만 골라 지원하려다, 행정비용을 고려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조건 없이 모두 주는 ‘재난기본소득’이 실시됐고, 효능감을 느낀 국민들은 기본소득에도 마음을 열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은 정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떠올랐고, 기본소득을 브랜드 삼고 몸집을 키운 정치인 이재명은 대선에 도전했다. 2022년 3월 대선은 ‘한국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첫 국가가 될까’라는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기대는 잠시 꺾였다. 혹자는 기본소득도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밝혔듯 기본소득이 한국에서 이만큼 성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은 잊히기는커녕 새 시대에 맞는 새 옷을 입고 미래 의제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기본소득 2기를 마감하고 기본소득 제3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첫째, 기본소득의 정당성이다. 기본소득은 변덕스런 정치 공간에서 부여잡아야 할 정의롭고 바람직한 대안인가? 분명히 그렇다. 둘째는 기본소득 2기의 성취와 한계다. 먼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보자.
기본소득이 정당한 이유는 먼저, 어떤 사회보장제도보다 보편 인권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두 축인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가운데 사회보험은 능력에 따라 보험금을 내고 낸 것을 돌려받는다. 소득이 적고 배제된 사람은 지원을 못 받거나 박하게 받는다. 공적연금에서 특히 그렇다. 공공부조는 지원할 사람을 소득, 근로능력 등을 엄격히 심사해 골라내며 이 과정에서 대상자에게 무능력의 낙인을 찍는다. 기본소득은 기여의 논리로 차별하지 않고 선별의 논리로 낙인찍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누구나 인권의 이름으로 평등하게 지원한다.
둘째로 기본소득은 민주공화주의 헌법정신에 가장 충실한 제도다. 민주공화주의는 공화국의 모든 성원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와 공화국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공화국 시민은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도, 타인을 노예로 부릴 만큼 부유해서도 안 된다”는 공화주의자 장 자크 루소의 말을 기억하자. 경제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해야 할수록 독립적 의사 표현과 결정이 어렵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국민의 기본적 생활수단 역시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은 분배정의의 대전제,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를 실현한다. 정치공동체에서 모두의 몫이란 무엇인가? 토지, 천연자원, 대기와 햇빛은 누가 원천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동자원이다. 오래 축적된 지식, 문화, 데이터 등도 집단적 기여를 통해 창조한 공동자원이다. 이를 ‘공유부’(commons)라 부른다. 공유부에서 발생한 수익은 모두가 권리를 갖는 ‘모두의 몫’이므로 당연히 동등하게 나눠야 옳다. 기본소득은 ‘공유부 수익의 평등한 배당’이다. 물론 그 수익 창출에 참신한 기여를 한 이들의 노력은 별도로 보상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공유부 수익의 권리라는 주장에, 성장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Robert Solow)의 연구를 참고할 만하다. 그는 1909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에서 생산성 증대의 87.5%는 노동과 자본과는 무관하다고 실증했다. 즉 20세기 들어 인류가 이룬 놀라운 생산성 향상에는 자본과 노동,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보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이란 유산이 더 큰 기여를 했다.²⁾ 그러면 우리는 개인 기여와 무관하게 발생한 사회적 부에 대해선 조건 없이 분배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이처럼 기본소득은 보편 인권으로, 민주공화주의로, 분배정의로도 철저히 정당하다. 기본소득을 실현하자는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자의 심장과 함께 여우의 지혜도 필요하다. 기본소득 2기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기본소득 2기의 가장 큰 성취는 보편적 소득보장이 시민의 권리라는 생각을 퍼뜨린 것이다. 그전까지 소득은 취업 경쟁을 뚫고 일자리를 얻거나, 자산을 투자해 수익을 내거나, 아니면 빈곤과 무능을 탈탈 털어 보여줘 선별심사를 통과해야만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소득이 인간의 권리이며 조건 없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순하고 역동적 기본소득 원리가 대중의 관심을 일으키고 유력 대선주자의 정책으로 실현 직전까지 갔다.
한편 2기의 한계는 무엇인가? 기본소득이 정치 의제가 되면서 그 이상을 현실에 타협해야 했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매력도 흩어졌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거리를 둘 수 있을 만큼 액수가 충분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려고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우회하다가, 액수를 낮추고 증세도 포기하고 기본소득과 다른 정책의 차이를 지우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기본소득은 애초의 매력을 잃고, 그런데도 재정은 상대적으로 많이 드니 경쟁하는 정책보다 우위를 보이기 힘들었다.
따라서 기본소득 3기의 과제는, 기본소득의 보편주의가 갖는 정당성과 매력을 줄이지 않으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을 시민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본소득 이상을 구체화한 미래사회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본소득 원칙을 지키면서 다른 정책 대안들과 유연하게 연대해서 ‘기본소득과 그 연합’을 다수파로 만들어야 한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본소득 대한민국’의 꿈을 꾸고자 합니다. 이 위기를 넘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온 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자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사회’를 마침내 실현해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후보 출마선언)
위대한 사회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면, ‘거대 지렁이’처럼 닥쳐오는 암울한 미래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하려면, 우리의 선택은 기본소득이다.
1) 아래는 필자가 쓴 ‘국민 생활보장 ‘기본소득’ 끝?…이제 시작이다‘(중기이코노미)를 수정했다.
2) 윤홍식, ‘모두를 위한 소득보장정책’,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헤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