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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멜라스를 향하는 사람들 - 1기 소셜투어를 돌아보며

필자
기본소득당 노서영 조직실장
인터뷰어/사회/대담
지난해 하반기에 기본소득당은 다양한 사회 참여 경험과 기여를 원하는 대학생·청년들과 ‘소셜투어(Social Tour)’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소셜투어는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탐방하며 거기 살고 일하는 사람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1기 소셜투어의 주제는 ‘기후위기로부터 배우는 여행’이었다. 30여 명의 대학생·청년 소셜투어리스트들은 두 달 동안 기후·환경에 관련한 장소를 찾아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필자는 총괄 가이드로 그들과 함께 했다.

기후위기가 주제인가

근대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던 2022년 8월, 서울 관악구에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면서 발달장애 가족 3명을 비롯해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 경기도 화성시에선 한 공장 기숙사용 컨테이너에 토사가 덮쳐 이주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기상청은 “지구온난화 등 열적 상황이 변하면서 수증기량이 과거보다 늘었고 해수면 온도도 높아졌다”며 국내 여름철 강수 형태와 전선 강도 변화를 이번 폭우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기후 통계상 경남 통영·전남 목포·제주 등 남부 지역은 1년 중 8개월 이상 월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인 아열대기후에 진입했고, 높은 기온에 꽃들이 일찍 개화해 전남과 경남 지역에는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수도권에 폭우가 내리는 동안 남부 지방은 불볕더위에 시달렸고, 평년의 57.9% 수준밖에 비가 내리지 않아 오히려 심각한 가뭄을 겪었다. 한편 태풍 ‘힌남노’는 경북 지역을 덮쳐 약 11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격화된 폭염, 폭우, 산불, 가뭄, 한파, 그리고 감염병의 다른 이름은 ‘기후위기’다. 정부 기관이나 언론에서는 ‘기후변화’라고만 언급하고 마는 기후위기로부터 이제 누구도 안전하지 않지만, 그 결과를 먼저 치르고 있는 이들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불가역적이고 공통적인 재난과 그 차별적인 피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모두가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듯 개인과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 또한 확실한 탄소 감축과 불평등 해소를 천명해야 한다.

쪽방촌의 주민들

투어리스트들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 발생한 침수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일주일 뒤에 서울 동자동 쪽방촌으로 향했다.
화려한 서울역 맞은편에 자리한 동자동 쪽방촌에는 2022년 기준으로 쪽방 1,163개가 건물 67동에 밀집해 있고 1,083명이 살고 있다. 우리는 ‘사랑방 마을 공제협동조합’이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마을청소를 도왔다. 함께 청소에 나선 주민협의회 소속 주민 분들은 마을이 지저분하지 않도록 격주에 한 번 꼼꼼하게 마을 청소를 한다고 했다. 골목골목 쓸다 보니, 주민들이 열심히 싸워 얻어낸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들의 빨간색 깃발이 꽂힌 집들이 여럿 보이기도 했다.
“여기 (기초생활) 수급자가 많아요. 여름도 여름인데, 겨울은 정말 힘듭니다. 너무 추우니까 냄비에 물을 끓이는데 잘 때도 가스 불을 계속 끓일 수가 없잖아요. 그럼 그게 금방 얼고 서리가 낍니다.”
“월세가 밀리거나 냄새가 코를 찔러서 돌아가신 분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아요. 벌써 몇 분이 돌아가셨어요. 근데 집주인은 그걸 우리더러 정리하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몇 분 보내드렸어요.”
마을에서 가장 넓은 장소인 새꿈어린이공원에 둘러앉아 사랑방 마을 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폭염과 폭우로 힘든 점을 여쭤본 것이 부끄러웠다. 재난이 이미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거불평등과 기후불평등은 거의 같은 말이었다. 화장실 하나를 열 가구가 쓰는 건물에서 10여 년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건물주들은 2015년 주거급여 제도가 마련되자 월세를 올려 ‘빈곤 비즈니스’로 돈을 벌었다. 주거급여 제도가 오용되는 동안 주거가 취약해 기후재난에도 취약한 사람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쓰레기 소각장의 노동자들

동자동을 다녀온 지 약 한 달 뒤에 찾은 곳은 마포자원회수시설이었다. 예전에는 쓰레기 소각장이라 불린 곳이다. 이 시설에서는 소각 과정에서 나오는 연기에서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일부를 에너지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우리는 태어나 처음 본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마주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험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다 너무 많은 동료를 잃은 환경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조합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국환경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전까지 ‘불가촉천민’이었다고 스스로 소개하셨다. 사람들의 생활 반경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지어지는 시설인 만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는 모른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죽음에 무뎌지고 싶지 않은데 자꾸 무뎌진단다. 소각장 바깥에 오염물질을 내놓지 않기 위해 각종 장치가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 안에 일하는 사람들의 몸 안에 그것들이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인천에 더 이상 서울 쓰레기를 묻을 수 없는 서울시는 마포구에 신규 자원회수시설을 지하화해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마포구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노동조합은 시설 내부가 더 폐쇄적인 공간이 되어 공기나 열기 순환은 더 어려워지고 노동자의 정신적, 신체적 부담도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지하화에 반대한다. 그런데 정작 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묻지 않은 탓에, 지하화라는 키워드는 쟁점조차 되지 못한 채 시와 구의 갈등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소셜투어리스트들 (a.k.a. 소투리)

책 『동자동 사람들』의 저자 정택진은 동자동을 ‘오멜라스’에 빗댄다.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오멜라스(Omelas)는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인데, 한 어둡고 구석진 건물 지하실에는 굳게 잠긴 벽장 안에 벌거벗은 아이가 갇혀 있다. 뼈가 앙상한 몸에 배만 튀어나왔고 배설물로 온몸이 짓물린 아이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놀랍게도 오멜라스의 시민들은 누구나 이 아이의 존재를 아는데,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의례적으로 벽장 앞에서 아이와 마주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오멜라스가 누리는 모든 기쁨과 행복이 벽장 안에 갇혀 있는 저 아이의 존재로 인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알지만, 곧 수많은 시민의 행복을 단 한 명의 행복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를 잊어버린다.
약 두 달 동안 소셜투어리스트들은 ‘오멜라스’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동자동의 진실을, 소각장의 진실을 마주했고 외면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기후재난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자연의 생물들을 만나고, 다큐멘터리로나마 구제역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농장에서 태어나 도축되는 돼지의 삶을 따라가기도 했다. 상상도 못 했던 진실은 아니었지만, 벽장 안의 아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의 고통 위에서만 나의 행복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생 소셜투어 1기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탈탄소 캠프’ 수료식 때 많은 투어리스트들이 수료증보다 의미 있던 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난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경험을 나눌 수 있었던 우리라면, 오멜라스를 떠나는 선택에서 더 나아가 언젠가는 진실을 구조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소셜투어는 1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