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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책 정당의 가능성 보여준 횡재세

필자
용혜인의원실 장흥배 정책보좌관
인터뷰어/사회/대담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국내 횡재세 도입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때는 2022년 4월이었다. 영국 정부가 에너지이윤부담금(Energy Profits Levy)이라는 이름의 횡재세를 석유·가스 기업들에게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한 때가 5월 26일이고, 그 이전까지 해외에도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횡재세는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사적인 제안이었다.
세법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12월 현재 기획재정위원회 안건 상정이 불발됨으로써 올해 횡재세의 입법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공론장에 선도적으로 제출할 것을 선택한 시점부터 이후 과정 전체에 걸쳐 횡재세는 자랑할 만한 성과를 냈다. 여기서는 횡재세의 규범적 정당성이나 사회적 필요성이 아니라, 원내 1인 소수정당의 정책 의제 주도성 측면에서 하나의 교훈적 사례로 횡재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횡재세, 의제 선택한 순간 절반의 성공

국제 사회가 횡재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시기는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다. 국제통화기구(IMF)는 2021년 4월 12월 발표한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에서 선진 경제권이 코비드-19 회복 기여금과 ‘초과’법인이윤세(‘excessive’ corporate profits taxes)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횡재세는 코로나 경제위기 국면에서 과도한 이익을 누린 법인에 대해 선진국이 고려할 수 있는 옵션으로 소심하게 언급됐을 뿐이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로 기인하는 국제 유가의 폭등은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2021년 말부터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정부는 이에 유류세 인하 조치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2021년 11월 유류세 20% 인하로 시작해, 2022년 5월과 6월에는 30%까지, 그리고 다시 7월부터 연말까지 37% 인하를 시행했다. 국내외적으로 횡재세 이슈가 급부상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었다.
도입 필요성 제기부터 현재까지 공론화 과정 전체를 보면 횡재세 의제의 선도적인 선택이 성공의 절반을 결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오래 전부터 주로 경제위기의 시기에 횡재세를 한시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기에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부상할 이슈였다. 국내에서도 고유가 환경은 마찬가지였고 이 조건에서 정유사들이 막대한 초과이득을 향유하는 중이었다. 먼저 이슈를 제기한 쪽에서 이후 의제 주도성(issue-ownership)을 확보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는 그런 이슈였다.

분석 자료와 법안 발의로 주도성 이어가

용혜인 의원실은 4월 25일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효과는 40%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러한 분석 결과가 횡재세 도입 필요성에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류세를 인하하는 대신 횡재세를 도입한다고 유가가 하락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한 정성이 들어간 분석 자료는 국내에서 횡재세 논쟁을 본격 점화시키는 불꽃 역할을 했다. 유류세 인하해봤자 대부분 이익이 정유사로 흘러간다는 울분을 객관적 수치로 제공한 분석은 고유가에 고통당하는 소비자들과 이를 대변하는 언론의 관심을 촉발하기에 충분했고, 이후 횡재세의 정당성을 보충하는 근거로 작동하였다.
그 이후에 횡재세 법안이 필요했다. 원내 정당은 자신의 주의주장을 법안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완결성을 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횡재세 논의를 지속하고 이후 의제의 주도성을 이어갈 계기로도 법안은 반드시 필요했다.
용혜인 의원의 횡재세 법안은 입법에서도 평가할 만한 요인들을 만들었다. 먼저 정유사에만 집중된 횡재세 부과 대상에 은행을 추가했다. ‘기업 자신의 노력이 아닌 외부효과에 의한 초과이득은 사회가 일정 부분을 환수한다’는 횡재세의 취지에 비춰 은행을 포함하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하반기로 갈수록 고유가보다 고금리의 사회적 고통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용 의원실이 판단한 것이기도 했다.
용혜인 의원안에는 횡재세가 세법에 처음 도입되는 것임을 감안해 횡재세 반대론에 빌미가 될 만한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법안의 입법기술적 완성도가 높다고 반대 진영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리는 없지만 법안이 엉터리라면 공격거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용혜인 의원안은 법인세 과세특례 규정을 추가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으로 제출됐다. 이 개정안에서 횡재세가 기존 법인세와 중복과세 되지 않도록 세액공제 규정을 두었다. 이중과세 위헌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또한 초과이득이 너무 커서 횡재세액이 기존 법인세액을 초과할 경우엔 그 초과액은 없는 것으로 하였다. 과잉금지 위헌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다.
이 밖에도 횡재세의 과세표준인 초과이득을 결정하는 데서 대표성의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두었다. 횡재세 명목세율은 50%이지만 실효세율은 30%를 넘지 않도록 설계해 현재 유럽연합의 연대기여금(횡재세)이 제안하는 33%보다 다소 낮게 설정했다. 횡재세가 돈 많이 번 기업에 대한 징벌적 세금으로 홍보될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공통부 기본소득론과 연결되는 횡재세

단지 원내 1인 소수정당의 홍보 수단으로서 이슈에 불과하다면 기본소득당에게 횡재세의 의의는 그만큼 반감될 것이다. 의제는 기본소득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일수록 좋다. 그런 점에서 횡재세가 기본소득당의 ‘공통부 기본소득론’에 부합하며, 증세 정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의제라는 점이 환기될 필요가 있다.
횡재세는 경제주체의 노력에 전부 귀속할 수 없는 경제적 외부효과의 존재를 공동체가 인정하고 이를 세법의 형태로 제도화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는 지식 공통부, 빅데이터 공통부 등에 대한 정당화 근거로 작용할 것이고, 그만큼 증세와 증세 정치의 담론적·제도적 지형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용혜인 의원안은 공통부 배당론에 비춰 한 가지 타협을 했다. 횡재세 세수를 초과이득공유기금에 편입해 금융 및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재원으로 사용토록 한 것이 그것이다. 이는 앞서 발의한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이 세수를 모든 국민에게 평등 배당하도록 한 것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재원의 선별 사용이라는 점에서 공통부 기본소득론의 후퇴로 읽힐 소지도 없지는 않다.
이 타협은 이후 횡재세 논의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동했지만, 법안의 결정 당시에는 의원실은 고민이 컸다. 만약 설계하는 법안이 지식 공통부에 대한 과세였다면 세수의 전 국민 평등 배당을 결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용혜인 의원안에서 횡재세 설계는 유연한 정세 대응이란 면에서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평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