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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방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

필자
기본소득당 대구시당 창당위원회 신원호 위원장
인터뷰어/사회/대담
내가 활동하는 곳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다. 스무고개의 다음 질문으로 안 가도 이 한 문장으로 답을 맞힌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답은 대구다. 14년째 이곳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운동을 하며 가졌던 고민들을 함께 나눠볼까 한다.

서울러를 상상하며 대구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2022년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인천과 경기 즉 수도권에 살고 있다. 지난 14년 동안 해마다 발표하는 통계청 자료는 대구로부터 인구 유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점은 사회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많은 활동가들이 서울로 향했다. 오래된 의제는 지방에서 더 가파르게 동력이 줄어들고, 새로운 의제는 수도권에 주로 생겨나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경계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이는 또다시 현실 조건을 차이를 만든다. 언론의 주목이 약하고 자원과 인력을 집중하기 힘든 비수도권에서는 우리 지역의 문제들을 공론화하기보다 중앙의제 즉 수도권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함께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실상이다. 이는 결국 비수도권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수도권을 바라보는 처지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은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나 서울을 상상하고 서울로 한 발 더 다가가려고 오늘을 보낸다. 내일은 ‘서울러’가 될 것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여기 대구에도 수많은 청년들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무려서울에서 돌아온 사람들

최근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온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무려’ 서울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글스의 류현진이 다른 리그도 아닌 메이저리그에 갔다가 다시 이글스로 돌아와 유니폼을 입자 열광하는 이글스팬들 모습이랄까.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들의 주목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곳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서울 지역 중 어느 다른 지역이 아닌 ‘서울’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여전히 서울 로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에 다양한 사람들과 기본소득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인적 구성으로 연속해서 진행한 모임이었다.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받고 난 다음이라서 대구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모임마다 공통으로 나눈 이야기가 있는데, “전 국민이 받는 기본소득뿐 아니라, 지역마다 지방정부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이었다.
모든 지자체가 같은 액수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서울에 가겠다는 대답이 반을 넘지 않았다. 그러면 만약 지방정부 재정역량에 따라 서울시에서 더 많은 액수를 지급한다면 어떨까? 반 넘는 사람들이 서울로 가겠다고 답했다. 기억이 나는 어떤 이는, 설령 서울보다 대구가 더 많은 기본소득을 주더라도 서울에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사는 친구는 재난지원금을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지역화폐는 편의점에서만 쓸 수 없다보니 편의점 쿠폰 받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재난지원금에서조차 서울 시민권의 위력은 막강했다.

기후위기 해결과 인프라 확보, 어려운 딜레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프라 격차는 오래 된 이야기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무분별한 토건사업에 반대하자는 의제는 비수도권에서 자리 잡기 어렵다. 거리에서 캠페인을 할 때도 어떤 사람들은 “서울 개발을 멈추고 지방에는 투자를 해야지”라고 하며 지나간다.
대한민국 지도를 보노라면 수많은 고속도로의 얽힘이 서울이 심장임을 드러낸다. 차와 사람과 물량은 수도권을 향해 집중되고 있다. 서울과 대구의 지하철 노선도에서도 그 차이가 한눈에 보이는데, 이제 3호선까지 개통된 대구에 비해 이미 1985년에 3호선을 개통한 서울은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편리해 보인다. 서울 사는 누군가가 서울은 대구보다 인구가 네 배 많으니까 노선도 네 배 많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대구는 서울에 비해 인프라를 4분의 1만 가져야 공정한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방분권, 수도권 규제, 인구과밀, 행정분산, 공공기관 이전... 참 다양한 방식으로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모색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성장과 인프라 확충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비수도권에서 어떻게 운동으로 만들어갈지 고민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비대면 활동 증가였다. 강의, 공연, 회의, 모임, 행사... 많은 활동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적 인프라를 물리적 거리에서 벗어나 즐기는 점은 비서울에서는 큰 변화였다. 비록 오프라인만큼은 아니지만 모두가 온라인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왕복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도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경험이 비서울에서는 한동안 화제였다.
3년의 시간이 흘러 2022년 연말인 지금 어느덧 하나 둘 일상을 회복하고 있으며 마스크를 벗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비서울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문화 향유의 경험이다. 다시 서울과 대구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그동안의 변화를 보면서 앞으로도 이처럼 물리적 거리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그건 임시적인 변화였다는 답을 듣고 있다.

주변과 중심의 욕망의 먹이사슬

10년 전, 영남에서 탈핵운동이 활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동해안에 몰린 핵발전소들과 잦은 지진에 대한 경각심은 탈핵운동으로 관심을 이끌었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 밀양과 청도 등의 마을을 관통해 고압 송전탑을 짓는다는 정부의 계획에 탈핵운동가들은 “그렇게 원하면 서울에 두지, 왜 하필 여기냐”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성주 소성리에 군사무기를 배치하겠다고 공권력이 나서서 주민의 의견수렴이나 대화 과정도 없이 속전속결로 일을 해치워버렸다. 시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때도 외침은 같았다. “그렇게 원하면 서울에 두지, 왜 하필 여기냐.”
반복해서 뱉어낼수록 답답함이 쌓이는 외침이다. 비서울에서는 자괴감 드는 말이다. 저 말을 뱉는 순간에도 비수도권은 수도권을 떠받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도시인 대구도 주변 경북 중소도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보이지 않는 국경,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보이지 않는 국경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며 먹이사슬처럼 얽혀있다.
오늘도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대구 주변의 중소도시의 이야기들을 SNS로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고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