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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나

필자
용혜인의원실 홍순영 비서관
인터뷰어/사회/대담

핼로윈 축제날 150여 명 이태원 골목에서 압사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아침, 핸드폰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급하게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축제를 즐기러 간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깔려 죽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8년 전 세월호가 물에 잠기던 순간이 먼저 떠올랐다. 내 동년배들이 제 때 구조되지 못해 떼죽음을 당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비통한 이들을 정부가 적대시한 세월호 참사의 경험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참사를 막지 못한 순간

국민 안전과 재난 대응에 근간이 되는 법 ‘재난안전기본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는 재난 예방부터 현장 대응, 참사 수습까지 모든 순간에 실패를 거듭했다.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맞게 되는 핼러윈데이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누구나 예측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어떠한 안전관리 대책도 세우지 않았고 경찰은 적절한 안전 관리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대형 사고의 징후가 나타났지만 경찰은 기동대를 포함한 안전 관리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았다. 현장의 안전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책무가 있는 용산구청, 통합관제센터, 서울교통공사 등의 안전관리책임자들은 어떠한 대처도 하지 않았다.
사전 예방 실패와 사고 징후 파악의 실패는 곧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소방당국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깔리고 넘어진 뒤에야 현장 수습에 나섰다. 현장 대응은 부실했다. 무수한 잘못들이 겹치며 ‘골든타임’을 놓쳤고 살릴 수 있는 인명을 살리지 못했다.
소방의 공동대응 요청에 경찰은 응답하지 않았고, 인파 통제의 핵심인 기동대를 제때 투입하지 못했다. 현장 대응을 총괄하고 지휘해야 하는 경찰 지휘부는 뒤늦게 참사를 인지하는 바람에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서울시, 용산구도 참사 수습에 관해 아무런 지휘를 하지 못했다. 재난문자, 재난안전통신망, 재난정보관리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부재했던 컨트롤타워

골든타임을 놓쳐 피해를 키운 근본 원인은 컨트롤타워 부재였다. 재난 대응 단계를 정하고 부처 간 협업을 지휘할 권한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있고, 행정안전부장관이 본부장을 맡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참사 후 한참이 지나도록 중대본을 가동하지도 부처를 지휘하지도 않았다. 중대본은 참사가 나고 255분이 지나서 설치되었다. 중대본의 늑장 설치는 현장의 혼란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존재하는 재난대응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지자체의 늑장 대응 때문이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자체장은 응급상황에서 경보를 발령, 전달하고 긴급수송 및 구조수단을 확보하며 현장지휘통신체계를 구축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재난문자는 참사 후 90분이 지나 발송되었고, 재해의료지원팀(DMAT)은 자정이 다 돼서 한 팀 도착했다. 현장지휘통신체계는 엉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참사에서 무엇을 했는가? 대통령실이 밝힌 당시 대통령의 시간별 행적에 따르면, 대통령은 ‘응급의료팀 파견, 병상 신속 확보, 교통통제’ 등 이미 현장에서 조치한 부분을 뒷북으로 반복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참사 현장에 전달되었는지, 재난안전의 최종 컨트롤타워로서 적절한 지시를 했는지 짚어봐야 할 문제다.

참사 축소와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

참사 예방과 대응에 무능했던 정부는 참사를 수습하는 데도 할 일을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12월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는 책임 표명과 사과, 진상규명,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 등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참사 직후 맨 먼저 한 일은 ‘참사 축소’와 ‘책임 회피’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 바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도어스테핑을 중단했고 대통령은 언론 앞에서 사라졌다.
그 직후 정부 부처에 ‘추모 가이드라인’이 전달됐다. 그 내용은 영정사진과 위패를 생략한 분향소,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 패용, 용어는 참사와 희생자가 아닌 ‘사고’ ‘사망자’로 통일 등이었다. 참사를 축소하기 위한 장치로 애도가 활용되었다.
이상민 행안부장관,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하나같이 정부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주최 없는 행사였기 때문에 매뉴얼이 없었다” 운운하면서 말이다.
희생자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시점에 경찰은 이태원 참사가 정권 안위에 부담을 줄 가능성을 분석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해 ‘어딘지 모를 상부’에 보고했다. 어떤 정부 공직자도 국민이 납득할 ‘사과’와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참사의 ‘책임’을 오로지 수사기관에 의한 형사적 처벌로 끝내려고 한다. 수사 방향은 ‘윗선’을 겨냥하지 않고 구조에 고군분투했던 일선 실무자로 향했다. 특수본의 몰아가기 식 조사로 심한 압박을 느낀 두 명의 공무원이 세상을 등졌다.

일방적이고 모욕적인 피해자 대응

정부가 참사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참사 피해자들은 철저하게 방치됐다. 유족은 희생된 가족을 찾아 여러 병원에 직접 연락하고 십 수 시간을 헤맸다. 시신을 인계받고도 사인조차 알 수 없다는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정부가 유족과 피해자에게 내놓은 지원 방안은 모욕적이고 천박했다. 참사 이틀 뒤 정부는 위로금과 장례비를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발표했다. 그러자 ‘놀러가 죽은 사람에게 왜 세금을 쓰냐’, ‘지원금 반대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부는 1:1 전담 공무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그 공무원들은 유족의 요청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서울시 가이드라인에는 유족이 다른 유족과 소통하지 못하게 차단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소통창구를 마련해달라, 진상규명 과정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유족들이 요구했지만 이는 묵살당했다.

반복되는 참사, 이제는 달라야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교실에서 세월호가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직면하면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은 일 년에 하루, 핼로윈데이에 유령이나 귀신 분장을 하며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일상에 대한 그 당연한 믿음이 깨졌다. 그리고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진실을 또다시 목도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처럼 이번에도 참사 예방에 실패하고 그 후에는 참사를 축소해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경험한 우리는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형사 처벌을 위한 수사를 넘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독립적 재난 조사를 통해 책임자들의 책임을 똑바로 물어야 한다. 다시 이런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사회적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는 데 절실한 마음으로 힘을 보태고자 한다.